[Old] 핀란드 노키아 Nokia 단상: 삼성 폭발 파동을 보며

2016.09.29.

이제 핀란드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지인들에게 말하면, 지인들은 크게 두 가지를 ‘핀란드’에 연상한다. “휘바휘바 자일리톨”(btw, 휘바는 ‘좋다’라는 뜻이라고 한다)과 “노키아”다. 한국에서 핀란드를 자일리톨의 나라로 각인시켰던 공격적인 광고를 기억하면 전자는 당연해 보이나, 국가에게서 한 기업이, 그것도 이제는 업계에 큰 영향력이 없는 기업이 연상되는 후자의 경우는 흔한일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노키아(Nokia)의 이미지는 강력했다.

노키아는 핀란드가 독립하기 전에 세워진, 어찌보면 국가보다 오래된 기업이다. 1865년에 목재 회사로 출발한 핀란드는 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전자, 통신, 임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키웠고, 1987년 처음으로 휴대폰 사업을 시작했다. 오늘 안 사실이지만, 이전에 패션 사업도 했었던 것 같다. 오늘 낮에 시내를 돌아다니가다 들어간 골동품 가게에서 여성 구두가 그려진 노키아의 1930년대의 포스터을 보았다. “Is this ‘the Nokia’?” 라고 예쁜 직원에게 물어보니 “Yes. they sold shoes at the period. isn’t it fancy?”라고 상냥히 대답했다.

90년대부터 휴대폰 시장의 왕좌를 차지한 노키아는 핀란드 국민들의 자존심이었고, 실제로 2007년 전성기때는 국민 2만 5천명을 고용한 거대 왕국이었다. 당시 핀란드 엘리트 학생들의 졸업 후 Top choice는 노키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명실상부 글로벌 1위 기업의 몰락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들고 등장하는 순간 노키아 리더십은 ‘오직 노키아가 표준’이라고 콧방퀴꼈다. 이에 스마트폰 패러다임에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으며, 끝까지 대중적인 안드로이드 체제를 수용하지 않고 과거의 유물로 버텼다. 이후 잘못을 인정하고 구원자로 MS를 선택했으나, 맥을 추지 못했으며 그렇게 노키아라는 스마트폰 브랜드는 사라졌다.

노키아의 몰락은 비단 한 회사의 무너짐이 아니었다. 다음의 표를 보면, 실제로 노키아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07년부터 핀란드의 경제성장률도 함께 어둠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Nokia curve

노키아의 몰락 이후, 노키아에서 양성된 굴지의 개발자들이 벤처계로 나오고, 대기업으로만 가던 청년들의 의식이 바뀌는 등 – 창업 생태계의 순기능이 있었다는 의견이 있으나, 아직까지 핀란드 경제에서 노키아 충격을 씻어 없앨만 하진 않은 것 같다. 그들이 반성하듯이, 핀란드는 노키아만 믿었고 – 그런 사태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핀란드의 노키아는, 한국의 삼성을 여러모로 떠올리게 한다. 나라를 움직이는 대표 기업. 흔히 말하는 삼성의 망하면 한국이 망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까지. 근데, 최근의 갤럭시 노트 결함이나, 오늘 접한 세탁기 파동과 같은 사건를 보니 농담만으로 치부할 것은 아닌 것 같다. 노키아가 한발 늦게 대응해서 스마트폰을 내놓았을때, MS와 손잡았을 때 – 시장은 ‘구식’, ‘스마트폰을 모르는 회사’라고 외면했다.  perception은 무서운 것이다. 삼성은 위기를 극복할 역량과 vision을 가진 리더십이 있는가?  그리고 한국은,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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